울산판화협회의 태동과 발전
울산판화협회장 김동인
90년대초의 울산미술은 빈약했으며, 판화로 치면 말 그대로 황무지였다.
미술대학의 부재가 그런 현상을 더 부채질 했으며 그로인해 미술협회 정회원이 기십 명에 불과했을 정도이니 판화에 대한 관심 또한 썰렁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울산의 미술에 판화 전공자가 생겨났다. 그가 바로 울산판화의 산 역사인 홍맹곤 선생이다.
90년대 초 일본에서 판화를 공부하고 돌아오신 선생의 주변에는 판화에 관심이 많은 작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였으며, 그로인해 선생의 울주군 외고산 작업실에는 언제나 작가들로 북적였다. 그때 나와 함께 선생의 작업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분들이 박현수, 박덕찬, 박세근, 박점영 선생이다. 공교롭게도 이미 작고하신 박덕찬 선생을 비롯하여 대부분 박씨 성을 가진 분들이었고 이후 4박을 빼놓고서는 울산 판화를 논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는데 이들은 판화협회 출범초기에 홍맹곤 선생의 작업실에 모여 밤 늦도록 술잔 기울이며 판화에 대한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으며 그보다도 더 진한 정을 나누었다.
그 결과 1994년 5월 가칭 협회의 전신인 ‘울산판화가회’로 출범을 선언하게 되었으며 초대회장으로는 박덕찬 선생이 맡게 된다. 그리고 그 해 12월 울산 모드니갤러리에서 김세원,김언배,박덕찬,박세근,박점영,박현수,홍맹곤 회원이 모여 창립 기념전을 가졌고 이듬해 부산과의 교류전을 시작으로 울산시인들과 시판화전을 경주 남산유적지에서 가지게 된다. 이후 협회는 울산시민들을 위한 판화 시연, 불우이웃돕기 작품판매전 등 다양한 행사와 22번의 회원 정기전과 수십 여회의 다양한 교류전에 참여하는 등 꾸준한 발표를 통해 판화의 저변확대는 물론 울산미술 발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후 울산대학교에 미술대학이 생겨나고 직장을 따라 울산으로 전입하게 된 김섭, 임영재 교수의 협회 가입이 울산판화협회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한 두분의 제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등 그동안 80여명의 작가들이 회에 가입함으로써 울산판화협회는 탄탄한 모습을 갖추기에 이르렀고 나아가 1997년 미술협회에 정식등록을 하고 분과로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술협회에 가입되어있지 않은 회원들이 다수 있는데다 대부분 서양화분과에 걸쳐있던 작가들이라 이들이 쉽게 판화분과로 이적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아 한동안 기준인원을 채울 수 없게 되었으며 결과 이듬해 자동으로 미술협회 안에서 분과자격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지금도 서양화 분과에 소속된 채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울산대학교에서 판화를 전공한 좋은 작가들을 대거 영입하게 되면 다시 정식분과로 승인받을 계획이다. 물론 지금도 울산대학교에서 배출된 훌륭한 판화가들이 외국과 서울 등지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 중 많은 작가들이 울산판화협회에 가입하고 정기전에는 빼놓지 않고 참가를 하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울산판화협회는 앞으로 많은 비젼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울산 안팎으로 주목 받는 미술단체로 성장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
그 힘을 바탕으로 울산국제목판화페스티벌을 6회에 걸쳐 연인원 500여명의 국내외 작가가 500여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훌륭하게 치러낸 바 있다. 이런 전차로 울산의 판화는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발전의 여지를 품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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